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A(33)씨는 지난달 임신을 계획하고 가임력 검사 지원을 신청하러 동네 보건소를 찾았다. 그러나 '올해 사업은 이미 다 마감됐으며 내년 초에나 신청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나이 등을 고려해 계획한 임신 시기를 더는 미룰 수 없었던 A씨는 지원금을 포기하고 자부담으로 검사를 받기로 했다.
A씨는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반기가 지나기도 전에 마감이라고 하니 아쉬웠다"며 "임신 계획 시기는 사람마다 다른데, 예산 때문에 하반기에 준비하는 부부들은 지원받기가 어려운 것은 문제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의 '임신 사전건강관리' 사업이 큰 호응을 얻어 지자체들이 줄줄이 신청을 조기 마감하고 있다. 지난 13일 기준 국비(평균 50%) 또는 지방비 소진을 이유로 임신 사전건강관리 지원 접수를 중단한 지자체는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 부산, 세종 등 5곳이다.
이 사업은 결혼을 했는지, 자녀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모든 20∼49세 남녀를 대상으로 여성의 경우 난소기능검사(AMH)와 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남성의 경우 정액 검사(정자정밀형태검사) 비용을 지원한다. 여성은 최대 13만원, 남성은 최대 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시작된 임신 사전건강관리 사업은 사실혼 관계를 포함한 부부와 예비부부에게 생애 1회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작년 13만명이 신청하며 좋은 반응을 얻자 올해 혼인과 무관하게 대상을 확대하고 횟수도 생애 주기별 3회로 늘렸다.
복지부 예산도 지난해 62억5천만원에서 올해 90억원으로 늘었지만, 이달 들어 복지부가 파악한 기준으로만 20만1천명이 사업을 신청하는 등 수요가 대폭 늘었다. 이에 예산 부족으로 신청이 조기 마감된 지자체들이 생기며 A씨처럼 임신 계획 시기가 연초를 지난 대상자들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직 6월이라 당연히 될 줄 알고 병원 예약부터 잡았는데 심란하다", "우리 지역은 이미 4월에 마감했다"는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서울시 등 일부 지역의 경우는 이미 지난해 예산 조기 소진으로 인해 올해 시행될 사업을 조기 시행하고, 작년 실시한 검사에 대한 비용을 올해부터 입금해 준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사업 내용은 좋고 잘 정착된 것 같지만 연간 정책을 더 균형있게 설계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온라인에도 "너무 좋은 제도다", "3회로 늘어서 좋다"는 반응과 "옆 동네는 되는데, 우리 지역만 안 된다니 아쉽다"는 얘기가 함께 나왔다.
인구학을 연구하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988년생이 63만명, 1990년생이 65만명 정도인 데 비해 1994년생은 72만명 출생해 숫자가 대폭 늘었다"며 "이들이 결혼·임신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됐으니 늘어난 숫자를 감안해서 관련 지원 사업 예산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광역지자체 내 기초지자체별로 수요 차이가 큰 만큼 먼저 광역 내에서 자체 조정을 시도하면서 예산을 보충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업 신청률이 높아 예산을 추가 확보하려고 다방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재원이 일반 회계가 아니라 (건강증진)기금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며 "곧 예산을 내려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