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베이옥션의 지난 2024년 9월 “삶의 흔적” 경매전에 출품된 조선시대의 ‘분재기’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 문서는 1640년 음력 2월 29일, 조선 중기 문신 검간(黔澗) 조정(趙靖, 1555~1636)의 아내 김씨가 긴 숨을 고르며 써 내려간 것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정중히 나누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재산 분급을 기록한 이 문서는 단순한 나눔의 목록이 아니라 조상(祖上)과 부군의 봉제사(奉祭祀)를 준비하고, 생전에 맺은 가족관계를 정리하며, 한 사람의 여생을 스스로 마무리한 조선 여성의 ‘유언장’이다.

◆ 유학자 집안의 격조 있는 마무리
검간 조정은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안중(安中)이며, 조윤영(趙允寧)의 증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섰고(1592), 정유재란 이후에는 강화 조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던 강직한 성품의 문인이었다.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시대적 소명 의식과 문사적 자질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의성인(義城人)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의 딸로서 남편의 곁을 지켰던 아내 김씨는 조정이 별세한 후, 1640년 이른 봄, 여덟 명의 자녀를 향한 마음을 일필휘지로 풀어낸다. 이 분재기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여성의 사후 분재 문서 양식을 따르며, 무엇보다 그 첫머리에 ‘봉사조(奉祀條)’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즉, 재산 분할보다 ‘제사 계승{奉祀權}’을 우선시하는 조선 유교 가문의 전통이 반영된 구조다.
◆ 재산 분배의 서열과 질서
문서에는 자녀들의 이름이 나이와 지위, 혼처에 따라 서열화되어 기록되어 있다. 첫째 아들 기원(基遠, 전직 현감), 둘째 아들 영원(榮遠, 유학), 셋째 아들 홍원(弘遠, 진사), 넷째 아들 형원(亨遠, 전직 군수), 다섯째 딸과 사위 이기(李岐), 여섯째 딸과 전 참봉 정위(鄭煟), 일곱째 아들 흥원(興遠, 유학), 마지막으로 이미 사망한 여덟째 딸 제위(祭位)까지. 사망한 자녀까지도 빠짐없이 기록하여 제사와 분급이 모두 포괄되었다는 점이 문서의 정중함과 섬세함을 보여준다.
말미에는 도망 노비의 명단과 ‘온양(溫陽)의 전답(田畓)’에 관한 별도 조항이 덧붙여져 있다. 문서의 필집은 아들 유학 흥원이 맡았다. 무엇보다 문서에는 부인 김씨 본인의 도장 ‘조정처지인(趙靖妻之印)’이 찍혀 있어, 여성의 명의로 문서가 작성되고 법적 효력을 갖췄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여성이 실제로 재산권과 문서권(文書權)을 일정 부분 행사했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 유산 분쟁의 시대, 400년 전 문서가 남긴 교훈
한지 위에 장문의 두루마리 형태로 작성된 이 문서는, 가로 460cm, 세로 48cm에 이르는 대형 크기이다. 문서 하단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인하여 찢김이 남아 있고, 전반적으로 얼룩과 구김, 변색이 있지만 내용은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분재기’라는 이름 아래 남겨진 이 문서는,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이별 서간이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가 자신에게 남은 유산을 아이들에게 고르게 나누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이 분재기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자 사후에도 정제된 질서를 꿈꾸었던 조선 여성의 지혜를 보여준다.
재산을 둘러싼 갈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되어온 인간사의 그림자다. 하지만 검간 조정의 아내 김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자녀들에게 공정한 분재를 ‘서둘러’ 마무리함으로써 봉사의 질서와 가족 간의 책임을 명확히 하려 했다.
오늘날 우리는 유산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형제 간의 법정 다툼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상속 분쟁이 극단적인 가족 해체로까지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400여 년 전 여성 재주의 주도적 분재 행위는 재산 분할의 윤리성과 책임 그리고 법적 정당성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검간의 아내 김씨가 보여준 ‘사려 깊은 분재’는 단순한 고문서가 아니라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와 책임의 모델이 된다.
형식은 다를지라도, 관계의 질서를 지키려는 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다. 공정한 분배, 분명한 의사 표시, 그리고 제사의 봉행까지 담아낸 이 한 장의 기록은 오늘의 법적 상속 질서가 회복해야 할 ‘품격(品格)’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