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리셀 참사 1주기 '꺼지지 않은 불씨'

인천 계양소방서 소방위 김동석
인천 계양소방서 소방위 김동석

2025년 6월 24일은 아리셀 참사 1주기였다. 1년 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내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23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8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연쇄 폭발로 번지며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이 단 42초 만에 극한의 열기와 유독가스에 갇혔던 그 순간은 아직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다. 특히 희생자 대부분이 불법 파견된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안전망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고의 원인은 명확했다. 원인은 리튬배터리의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으로 인한 제어 불가능한 화염 확산, 그리고 안전보건관리의 심각한 구멍이었다. 비상구는 ID 카드 소지자에게만 열렸고 심지어 하청·불법파견 노동자들은 대피 경로 자체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반복된 소규모 폭발과 화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설비 보강이나 전방위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소방은 마지막 방어선일 뿐이다. 소방은 언제나 '마지막 대응자'다. 화재경보가 울리고 출동벨이 울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예방 체계가 붕괴되었다는 증거다.

아리셀 현장은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구조적 안전망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우리를 맞이한 상태였다. 우리는 붕괴된 최전선에서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 싸울 수밖에 없었다. 1주기는 지나갔으나 과제는 아직 남았다.

참사 1년 뒤 경기도와 중앙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대책을 발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첫 구속 사례 기록, 노동안전주간 지정 및 이주노동자 안전교육 의무화, 그리고 CCTV 분석, 긴급 생계비 지원, 경기도형 재난위로금 제도화 등을 포함한 종합보고서 발간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위험물 취급 사업장에 대한 통합 관리·감독 체계는 여전히 분절돼 있고 소방과 산업안전공단 간의 협업 훈련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불법 파견·하청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희생을 막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조다. 아리셀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진짜로 다음 희생자를 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소방관으로서 그리고 재난 예방의 최전선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호소한다.

첫째, 설비·물질별 '실전형 복합재난 시뮬레이션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복합재난 상황에 대비하고 현장 대처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둘째, 비상구·대피로 접근권 보장을 법제화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모든 근로자가 안전하게 대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이주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안전보건교육 시스템 구축을 제조업 전반의 필수 요건으로 상향해야 한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으로 인해 안전 정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이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실질적으로 이행될 때 우리는 비로소 '구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기록으로 이어지고 기록은 마침내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날의 비극적인 불씨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제도와 의식의 화염을 더욱 단단히 채워야 할 때다.

우리는 이 비극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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