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철의 투시경] 단오절 단상

5월 31일은 음력으로 5월 5일, 곧 단오절이다.



단오절은 중국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멱라강(汩羅江)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날 5월 5일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278년 진(秦)나라가 초(楚)나라를 공격하자, 굴원은 자신의 조국 초나라가 침략을 받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다. 이에 굴원은 장의(張儀, 중국 전국시대 秦나라의 정치가이자 외교가)의 연횡설(連橫說)에 반대하였고, 합종설(合從說)을 지지한 그는 초나라 회왕(懷王)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귀양을 떠났다.



굴원은 귀양생활을 하던 중 음력 5월 5일에 멱라강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쓰러져 가는 조국 초(楚)나라와 왕을 향한 일편단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 반대로 돌아가는 세상사에 비관하여 결국 선택한 것은 멱라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굴원이 죽자, 초나라 백성들은 굴원을 추모하고자 하였다. 백성들은 배를 타고 그의 시신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백성들은 혹여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손상시킬까 우려하여 대나무 통에 찹쌀을 넣어 강물에 던졌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즐겨 먹는 쫑즈(糉子)의 유래가 되었다. 또한 웅황주(雄黃酒)을 뿌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물고기들이 술에 취해 굴원의 시신을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배려였다.



오늘날에도 굴원은 중국의 국민 시인으로 존경받는데, 그의 대표작으로 ‘이소(離騷)’가 있고, 초나라 회왕(懷王)을 추모하며 쓴 시 ‘사미인(思美人)’이 있다. ‘이소’는 굴원이 추방당한 후 유랑 중에 쓴 글로 총 374구(句) 2,477자(字)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상에 대한 슬픔, 분노, 한탄과 환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우국충정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굴원의 시문학과 절개를 기리는 문인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문인 송강 정철(鄭澈, 1536.12.6.∼1593.12.21.)은 자신과 굴원의 신세를 동일시하여 쓴 시가 많은데, 그중 대표작으로 굴원의 ‘사미인(思美人)’을 모방한 사미인곡(思美人曲)‘이 유명하다.



지난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중국에서는 한국이 중국의 단오제를 훔쳐갔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이 문제는 국제적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유네스코 회의장에서 행한 한국 대표의 기조연설이 인상적이었다. 그 연설문 중요부분을 소개한다.



“유럽문화의 원류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에서 기원한다. 만약 문화의 종주국을 따진다면 모두 이집트와 그리스 및 로마문명에서 나온 것이기에, 유럽 각국에 있는 모든 세계문화유산은 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단오가 중국의 굴원에게서 연유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수천 년 계승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화적 차이가 생겨, 이제는 완전히 다른 문화성을 지니게 되었다. 문화란 처음 발명하고 창조한 나라가 종주국은 될 수 있으나 그들의 몫은 아니다. 문화란 새롭게 계승시키고 또 새롭게 발전시킨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맞이한 단오절!



그 유래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게 한다.




굴원(屈原)의 시신 찾기에서 비롯된 용선대회 장면(출처 : 네이버)
굴원(屈原)의 시신 찾기에서 비롯된 용선대회 장면(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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