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승만 박사의 '화회문기(和會文記)'

김승만 고문헌·서화 전문가(국제뉴스DB)
김승만 고문헌·서화 전문가(국제뉴스DB)

(서울=국제뉴스) 박종진 기자 = 2016년 12월, (주)코베이옥션이 개최한 삶의 흔적 경매전, 그 자리에는 200여 년 전 경주 지방에서 작성된 한 장의 문서가 출품되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낙찰되었다.

바로 오늘 소개하는 ‘화회문기’이다. 200년 전 종이 위에 가족 공동체의 합의와 기억을 담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기록물이다.

가족 재산을 나누는 문서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분재기’일 것이다. 상속 재산을 일정 비율로 나누어 기록하는 문서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화회문기’는 얼핏 보면 ‘분재기’와 비슷하지만, 그 속사정과 작성 이유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분재기’가 법적 절차와 관례의 산물이라면, ‘화회문기’는 남겨진 이들이 서로의 합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재산을 나눈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다르다.

(사진제공=코베이옥션) 화회문기
(사진제공=코베이옥션) 화회문기

◆ 부모의 부재, 남겨진 형제자매의 합의

1806년 6월 25일, 조선 순조 즉위 6년의 여름날. 정조의 개혁이 막을 내리고 세도정치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바로 그쯤 경주 지방의 한 종가에서 장자인 계한(繼漢)은 아버지 제사를 마친 뒤, 당숙(堂叔)과 표종(表從)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장남 자신을 비롯한 12남매에게 재산을 고루 나누겠다고 기록했다. 그 시작은 권두의 한 줄에서 드러난다.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남은 자식들이 재산을 분배하지 않을 수 없소.”

‘분재기’는 보통 부모 생전에 미리 작성되거나, 사후에도 유언에 따라 비율을 정해 나누는 형식이다. 그러나 ‘화회문기’는 남은 가족이 서로 의논하여, 그 자리에서 합의한 내용을 기록한다는 점이 다르다. 말 그대로 ‘화목하게 회의한 문서’인 셈이다. 또한 학계에서 ‘화회문기’는 ‘분재기’의 일종으로 분류되지만, 작성 배경에 가족 간의 대화와 화목이라는 맥락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독자적 성격을 가진다.

(사진제공=코베이옥션) 화회문기
(사진제공=코베이옥션) 화회문기

◆ 형제는 균등, 자매는 상황별 차등

이날 합의에서는 5형 제에게 ‘분깃’ 즉 각자 차지할 몫을 고루 나누었지만, 7자매는 성인 여부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당시 사회상에서 성인 여성은 이미 시집간 경우가 많았고, 미성인은 아직 집안의 부양을 받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재산 분배를 적기 전에 6대조까지의 ‘봉사조(奉祀條)’를 먼저 언급했다. ‘재산’보다 ‘제사 계승’이 더 중요한 집안 가치라는 의미를 문서 맨 앞에 드러낸 것이다.

(사진제공=코베이옥션) 화회문기
(사진제공=코베이옥션) 화회문기

◆ 경주의 지명과 기록의 현장감

문서에는 ‘보문(普門), 첨성(瞻星), 월성(月城), 천북(川北), 동천(東川), 동정(東亭), 사리(沙里), 도지곡리(道只谷里≒都只谷里)’ 등의 지명이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경주부의 속리(屬里)와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종이에 적힌 고을 이름들이 200여 년 전 경주의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려 준다.

가로 144cm, 세로 48.2cm의 큰 종이에 또박또박 적힌 이 합의서는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1806년 여름, 형제자매가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모았던 그날의 공기마저 품고 있는 듯하다.

◆ 닮은 듯 다른 두 문서

분재기가 ‘재산을 나누는 법적 절차의 기록’이라면, 화회문기는 ‘남겨진 가족이 자발적으로 합의해 남긴 회의록’에 가깝다. 둘 다 재산 분배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나는 제도와 관례의 산물,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와 정서의 산물이다.

그리고 문헌에 따르면 화회문기는 단순한 사적 메모가 아니라 법적 형식을 갖추어 일정한 효력을 가진 문서였다. 다만 그 법적 형식 속에 가족 간의 신뢰와 화목을 중시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장치와 인간적 합의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화회문기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재산이 얼마였는지가 아니라 형제자매가 어떻게 서로를 설득하고 배려했는지가 보인다. 200년 전의 기록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그날의 합의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200년 전에는 종이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남겼다. 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되새기며, 작은 대화와 합의가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를 지탱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가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마음을 배려하고 신뢰를 쌓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절차를 넘어, 공동체를 이어가는 따뜻한 힘이 된다. ‘화회문기’가 남긴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온기와 삶의 지혜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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